저는 오랫동안 독서 모임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서 모임에서 친하게 지내는 부부가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이런 제안을 하더군요.
"은정 씨, 소개팅 할래요? 좋은 사람이 있어서."
"소개팅이요?"
"성격도 좋고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크고 학벌도 좋고 직장도 좋아요."
"이런 분이 왜 아직도 싱글이세요?"
"그게 이 양반이 직장이 미국이라 한국을 왔다 갔다 해요. 근데 조만간 한국 들어올 것 같다고 그러네요."
"아, 그래요? 한번 가볍게 만나봐요."
"네, 그럴게요."
그로부터 일주일 후 소개팅 자리에 나갔습니다. 한 남성분이 정장을 입고 앉아계셨어요. 누구신가 싶었는데 먼저 일어나서 인사를 하더군요.
"안녕하세요. 김은정 씨 되시죠? 저는 박진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드려요."
소개팅 남자는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처음 보자마자 '이 사람 진짜 너무 괜찮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날 첫 만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말이 잘 통했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저 열심히 살았습니다. 미국에서 좋은 대학도 나오고, 지금은 대기업에서 일해요."
"너무 근사해요."
그는 겸손하면서도 자신감이 있었고, 매우 예의바른 사람이었어요. 소개팅 이후 우리는 썸 타는 사이로 발전했어요. 일주일에 서너 번씩 만남을 가졌고,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길을 걷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선뜻 연인이 되기엔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던 중 남자쪽에서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은정 씨, 선뜻 저와 만나기엔 걱정이 되는 게 많으시죠? 일단 제가 다시 미국에 나가야 되고..."
"네, 맞아요. 사실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려요."
"제가 미국에서 딱 1년만 더 일해야 할 일이 있어요. 딱 1년만 더 있고 롱디 해볼래요?"
"그래요? 우리 한번 해봐요."
그렇게 그와 저는 미국과 한국에서 롱디를 하게 되었고, 그는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카톡으로 아침 인사를 보내는가 하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자주 사진을 찍어 보냈습니다. 머나먼 미국 땅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제 시간에 맞춰 짬을 내서 매일 전화도 해줬기에 바로 곁에 있는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무려 8개월 롱디를 하고 나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남편은 한 달 정도의 장기 휴가를 받아 한국에 왔고, 남편 명의의 아파트가 있어서 집 걱정 없이 신혼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행복한 신혼을 보내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미국 입국이 제한되어...
"여보, 코로나 때문에 미국행 비행기가 못 뜬대요. 여보는 어떡해?"
"아, 안 그래도 회사에서 매일이 왔네요. 지침이 내려질 때까지 한국에서 대기하라고 하네요."
"아, 그렇구나."
그렇게 예상치 못하게 남편의 출국이 미뤄졌고, 코로나로 인해 외출도 자주 못하게 되면서 우리는 집에서 붙어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남편이 부모님과 통화하는 내용을 듣게 되었어요.
"진아, 아파트 대출금 돈이..."
"지금 사시는 집 전세 주시고 이사 가시면 안 될까요?"
"그래, 뭐 그렇게라도 해야지."
"여보, 무슨 말이에요? 아파트 대출금이란?"
"아, 그게... 신경 안 써도 돼요."
"나도 이제 가족인데 어떻게 신경을 안 써요?"
"아, 저... 그게 사실이 아파트가 당신 명의가 아니에요. 사실 아버지 명의로 되어 있어요."
"아버지 명의요? 그럼 대출금 남은 거 아버님이 내고 계신 거예요? 얼마나 남았는데요?"
"아, 한 1억 좀 넘는데... 그 정도는 커버 가능하니 걱정 마요. 명의는 뭐 어차피 내가 물려받을 아파트니까 뭐 그렇게 말한 거예요. 걱정 마요."
남편은 괜찮다고 했지만 저는 걱정이 되었고, 시아버님께 남편 몰래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 그래 새댁아."
"아버님, 아파트 대출금 내셔야 한다고 들었어요. 걱정돼서 연락드렸어요."
"아유, 괜찮다 가. 아들놈 장가 가는데 집 하나쯤은 해줘야지."
"감사해요, 아버님. 남편은 아직 미국 다시 못 가고 집에 있어요."
"네? 미국? 웬 미국?"
"네? 미국 회사요. 미국 회사를 다시 가야 돼요."
"퇴사하고 들어왔다던데?"
"네? 퇴사요?"
통화를 끊고 저는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왜 시아버님께는 퇴사했다고 했을까? 누군가에게는 거짓말을 했다는 소린데... 알아봐야겠어요. 뭔가 이상한 점들이 많았고, 저는 남편에 대해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남편과 같은 회사에 다니는 지인을 수소문해서 회사에 남편이 정말 다니는지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은정 씨, 제가 며칠 동안 자세히 알아봤는데... 네? 박진이라는 사람은 회사에 없어요. 다니다가 나간 적도 없고요."
저는 너무 충격을 받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에게 사실 여부를 물어봤습니다.
"여보, 솔직히 말해 줘요. 당신이 말한 대기업 다닌 적 없죠?"
"아이,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는 분이 남편과 같은 회사에 다니고 계셔서 내가 물어봤는데, 그 회사에 박진이라는 사람은 다닌 적이 없대요."
"아이, 저... 아이, 그게... 그 회사 다닌 건 맞는데 정규직이 아니라 그... 1년 계약직이라 그런 거예요."
저는 그 말도 믿을 수 없어 남편을 더 추궁했습니다.
"계약직은 직원으로 안 떠요. 정말 당신 미국에서 대학 나온 것도 전부 거짓말이죠? 아, 그게... 거짓말한 거 있으면 지금 다 말해요."
"아, 사실 내가 다닌 대학은 그... 내가 말한 뉴욕 대학이 아니라 커뮤니티 칼리지예요. 편하게 부르다 보니 뉴욕 대라고 한 거고... 그리고 2학년 때 중퇴했어요. 전달에 약간 착오가 있었지만 이건 진짜야. 여권에도 쓰여 있어요. 이제 이제 진짜 없어요. 거짓말한 거."
사실 여전히 의심스러웠지만 그날은 그렇게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남편은 진실을 또 털어놨어요.
"사실은... 나 그 대기업에 다닌 적 없어요. 회사 건물 1층 카페에서 매일 회의실 사진 그냥 다 찍은 거예요."
"나 당신이랑 같이 못 살겠어요. 아버님한테 가서 다 말씀드릴 거예요."
저는 시부모님에게 가서 이 모든 상황을 말씀드렸습니다. 놀랍게도 남편은 부모님까지 속이고 있었어요.
"아버님, 남편이 절 속였어요. 학력도 속였고 직장도 속였어요."
"뭐? 뭐라고? 미국 회사 퇴사한 거 아니야?"
"거기 다닌 적도 없대요."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자 남편은 자포자기를 했는지 모든 것을 털어놓았습니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처음으로 거짓말이 아닌 진실을 이야기했어요.
"정말 잘못했습니다. 저는 사실 미국에 나간 적도 없어요. 여권도 가짜예요. 2015년부터 지금까지 무직 상태예요."
"뭐라고?"
"엄마, 아빠, 죄송해요. 대학교 졸업장도 모두 가짜였어요. 잘 살아보고 싶었어요. 잘못했어요. 여보, 미안해. 그래도 사랑해. 그것만은 진심이야."
결국 그렇게 모든 거짓말은 파국을 맞았습니다.
"아, 많이 힘드셨겠어요."
"변호사님, 저 이제 어떡하죠?"
"재판부에서 혼인 취소를 잘 안 해주시지만, 저희가 열심히 정리해서 호소해 볼게요."
이후 이 사건을 맡은 신 변호사는 최선을 다해 소장을 작성했어요. 사기 결혼을 당한 의뢰인의 억울함을 상세히 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 후, 다행히 재판부는 의뢰인의 억울함을 받아들여 주었고 혼인 취소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의뢰인은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갔어요.
쉽게 잊을 수 없는 큰 상처이겠지만, 잘 극복하시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시길 진심으로 기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