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사건을 맡긴 정 변호사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사건을 맡지 못하게 되면서 김 변호사에게 사건을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사건에 대해 김 변호사에게 자세하게 설명해줬습니다.
사건은 한 마을 공동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참여율도 높고 사무실까지 있어서 서로 친밀한 인간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마을 공동체였죠. 그곳에서 만나 친해진 두 부부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그 마을 공동체에서 벼룩시장이 열린 날이었어요.
"레몬청 많이 파셨어요?"
"아, 예. 다 팔고 요거 남았어요."
"어, 우리도 쿠키 다 팔고 한 봉지 남았어요. 그런데 이거 드리고 싶어서 가져왔어요."
"아니에요, 어떻게. 하나 남은 걸 그래도 맛보여 드리고 싶어서요. 받으세요."
"아니, 괜찮아요."
여자가 한사코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다가 그만 쿠키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땅에 떨어진 쿠키를 깔끔한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맛있게 주워 먹고 있는 거예요.
"아, 정말 맛있네요! 와, 내가 먹어본 쿠키 중에 제일 맛있다."
"아, 그래요? 제 꿈이 파티시에였거든요."
"꿈을 이루신 분이라 부럽네요."
"어머, 그러셨어요? 그럼 쿠키 만들기 취미반 들으러 오세요."
"어? 그런 것도 있나요?"
이후 남자는 정말 쿠키 클래스에 들어갔고, 그들은 그렇게 쿠키를 만들며 친해지게 되었어요. 둘만 있는 시간도 종종 생기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은 수강생들이 안 오려나 봐요."
"그러게요. 우리 둘뿐이네요."
"어, 왜 그러세요?"
"사실 요새 너무 힘들어서요. 남편이랑 사이가 안 좋아요. 이런 거 하지 말고 집에서 주부만 있기를 원하거든요."
"어, 왜요? 이렇게 재능이 있는 분을."
"제 재능은 인정해 주지 않아요. 밖으로 돌지 좀 말래요. 자기 말만 듣길 바라니까요. 강압적이고... 결혼 잘못한 거 같아요."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민형 씨가 너무 미인이라 불안한 마음에 그러는 걸 거예요. 제 아내도 제가 파티시에 하고 싶다고 하면 결사 반대예요. '회사나 열심히 다니라'고. 여기서 취미로 쿠키 굽는 것도 빌고 빌어서 허락받은 거예요."
"어머, 그래요? 우리 공통점이네요."
그렇게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더 가까워지게 되었는데요. 그러던 어느 날, 또 둘만 남게 된 날이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여자가 갑자기 강의실 문을 잠갔습니다.
"민형 씨, 문을 왜 잠그세요?"
"누가 들어오는 게 싫어서요. 진수 씨랑 둘만 있고 싶어요."
"네? 진수 씨도 그렇잖아요."
"아, 무슨...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거예요."
"괜찮아요. 문 잠그면 밖에서도 안 보이고 CCTV 없어요. 절대 아무도 볼 수가 없어요."
그날 그 둘은 문을 잠근 후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 말았어요. 그 후로도 그들은 사무실에서 만나 애정 행각을 벌이며 잘못된 관계를 지속해 나갔어요.
그러나 아무도 모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여자의 남편에게 금방 들키고 말았죠.
"너네 뭐 하는 거야!"
여자의 남편에게 애정행각을 들킨 두 사람은 무릎을 꿇고 앉아 싹싹 빌었어요.
"이것들이 미쳤나! 이것들을 죽여 버려!"
"응? 여보, 미안해. 내가 미쳤었나 봐. 잠깐 실수한 거야. 이번만 용서해 줘."
"정말 잘못했습니다. 다신 이런 짓 안 할 테니까 부디 선처해 주세요. 제발 아내에겐 알리지 말아 주세요."
"아내에겐 알리지 말아 달라고? 그 와중에 마누라 걱정은 되나 보지."
"제발 뭐든지 할 테니까 아내에게는 비밀로 해주세요."
"뭐든지 하겠다고? 예, 그럼 나... 내일 새벽 5시에 우리 집 앞으로 와."
그렇게 해서 고통의 새벽이 시작되었다고 해요. 남편은 남자를 데리고 산을 올랐고, 산에 오르자 참회를 하라며 108배를 시켰다고 합니다.
"자, 다 왔다. 자, 너 저기 가서 108배하고 와. 참회를 외치면서!"
"왜 못 하겠어? 다 소문 내버린다!"
남자는 새벽마다 산에 끌려가 108배를 했고, 시도때도 없이 걸려오는 그 남자의 전화를 받아야만 했다고 해요.
"여보세요?"
"아이 새끼야, 남의 가정 파탄 내놓고 회사 가서 번듯하게 일하고 있냐? 회사에도 싹 알려서 고개 못 들고 다니게 해줄까?"
남자는 순간의 실수로 인해 온갖 욕설과 조롱을 들으며 감정쓰레기통이 되어야만 했죠. 그렇게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괴롭힘에 시달리던 남자는 극단적 시도까지 하게 되었고, 그 소식을 들은 남자의 형이 병원에 찾아오게 되었어요.
남자는 그간의 일을 형에게 털어놓았고, 형은 모든 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네가 지은 죄가 있으니 너를 들어줄 수가 없다. 그래도 이 상태로 계속 살 수는 없지 않겠냐? 내가 그쪽하고 한번 이야기를 해볼게."
"형... 미안하고... 고마워."
형은 여자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안녕하세요. 저 김진수 형 되는 사람입니다."
"어, 네. 그런데요?"
"진수한테 상황 다 들었습니다. 진수가 잘못한 거 맞습니다. 100번 잘못했죠. 그렇다고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면 어떡합니까? 진수 진짜 죽었으면 그쪽도 맘편히 살 수 있겠어요?"
"불륜은 둘이서 저지른 거 맞습니까?"
"어머머, 저는 불륜 저지른 적 없거든요. 예, 저는 김진수 씨랑 만난 적 없다고요."
"증거 있어요?"
"증거? 그렇게 따지지 마시고요."
"뭘 따져? 그런 적 없다니까. 별일이야."
남편은 불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욕을 하며 전화를 끊어버렸어요. 그렇게 형과의 전화를 끊은 오민형은 김진수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어요.
"야, 너 형한테 뭐라고 했길래 나한테 전화 와서 지랄이야? 너 딴소리 말고 우리 남편이 시키는 대로 해. 우리 남편 말 안 들으면 네 처자식 다 까발리고 네 직장, 네 딸 학교에도 다 소문 낼 거야. 가정 풍비박산 낼 거라고."
"그러지 마세요."
"무서우면 내 남편이 하라는 대로 하라고. 그리고 난 너랑 만난 적 없는 거다."
여자는 자기 할 말만 한 채 전화를 끊었고, 남자는 더 큰 혼란에 빠졌죠.
"진수야, 안 되겠다. 이대로는 모두가 정상적으로 살 수가 없어. 변호사님 가서 도움을 받자."
"형, 아내가 알면 어떡하지? 아내가 날 버리면 어떡하지?"
"진수 씨도 상황을 다 아는 게 맞는 것 같다. 언제까지 속일 수 있을 거 같냐? 널 떠나든 안 떠나든 그건 진수 씨의 선택이고, 넌 그냥 빌어야지."
그렇게 남자는 형과 함께 아내에게 자신의 외도 사실과 그간의 상황을 모두 털어놓았어요.
"진수 씨, 미안합니다. 제가 동생을 잘못 가르친 거 같습니다."
"여보... 정말 미안해."
"놈의 새끼야. 그래, 당신이 저지른 잘못은 평생 잊을 수 없겠지. 하지만 그래도 살고 봐야지. 아주버님이랑 나랑 변호사 사무실 찾아가 볼게. 당신은 몸부터 잘 보살펴."
그렇게 해서 아내분이 아주버님과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고, 저희 로펌의 의뢰인이 된 거예요.
"아휴, 다 제 팔자인가 봅니다. 아, 그리고 변호사님, 남편이 자료들을 더 줬어요."
"변호사님 보여 드리라고. 매일매일 카톡으로 그날 통화 내역, 카톡 내역, 시도때도 없이 전화해서 어디서 뭐 하냐고 묻고 욕한 것 등... 핸드폰 자료들 모아둔 USB예요."
"그래요? 그리고 이건..."
"이사 가면 사람 붙여서 어디로 갔는지 알아낼 거고, 매장시키겠다며 이사 가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낸 거래요."
"어우, 이런 것까지 쓰게 했군요."
"그랬나 봐요."
"감사합니다. 증거로 제출하겠습니다. 현재 상황상 상간녀 소송, 강요죄, 협박죄로 고소 가능합니다."
"네, 셋 다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아내가 모든 상황을 다 알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오민형이 남자의 집으로 찾아갔어요.
"나 당신 남편이랑 외도한 적 없다니까요!"
"오민형 씨, 이제 거짓말은 그만하세요. 법적으로 해결할 거예요. 변호사도 선임했어요."
"그런 적 없다니까! 왜 내 말을 안 들어!"
오민형이 외도 사실을 부인하자 그녀의 남편도 함께 와서 집에 들어와서 깽판을 치기 시작했어요.
"야, 우리 마누라가 그런 적 없다잖아! 당신네들 변호사가 누군데? 나한테 번호 줘봐!"
그리하여 오민형은 저희 로펌에 전화를 걸었고, 사건을 맡은 김 변호사와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네, 김 변호사입니다."
"저기요, 저 오민형인데요."
"아, 네. 안녕하세요."
"저 불륜 안 했거든요. 무슨 증거로 절 고소하실 건데요?"
"음, 저는 피고 쪽과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정말 안 했거든요!"
"법정에서 만나서 말씀하시죠. 참고로 법정에서 거짓말하시면 위증죄가 될 겁니다. 그럴수록 재판은 길어지고 힘들어질 거예요."
김 변호사에게 의뢰인이 연락을 해왔어요. 상간녀 측과 의뢰인 측이 저희 로펌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꽤나 많은 인원이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한자리에 모여 앉았어요. 그리고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피고측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소송 안 하고 우리끼리 합의해서 끝내고 싶습니다."
"네, 원고측 분들도 동의하시나요?"
"우리는 소송 진행하고 싶습니다. 바람은 둘이 피웠으니 그쪽도 상간남 소송 하시려면 하세요. 나는 재판하면서 돈 들고 시간 들고 소문나고 마음 고생할 거 다 각오했어요. 사람을 1년 동안 그렇게 괴롭혀 놓고 벌받을 건 두려우신가요?"
며칠 전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피고측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쩔쩔맸습니다.
"이 일을 마을 공동체에서 알게 되는 것이 두려우신 거죠? 마을 공동체가 굉장히 소중한 인간관계인 것 같은데, 이웃과 소송을 세 개나 진행하게 되면 아무래도 소문이 날 테고..."
"예, 맞습니다.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이 마을에 비밀로 하고 계속 살고 싶습니다."
상황을 지켜보던 김 변호사가 말했습니다.
"그러면 원고측에 비밀을 꼭 지켜달라는 조항을 넣고 합의금을 높게 책정해서 지금 합의하고 끝내시는 건 어떻습니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합의금 4천만 원으로 하시고 소송은 모두 취하하는 건 어떤가요?"
"예,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도 좋아요."
그렇게 해서 모든 일을 비밀로 유지하는 것과 세 개의 소송을 취하해주는 것을 약속하는 조건으로 피고측이 원고측에 4천만 원을 주고 합의가 되면서 이 어려운 사건이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또 한 사건을 마무리짓고 김 변호사와 저는 각자 좋아하는 간식을 먹으며 지친 몸과 마음을 추스렸습니다.